#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약 50년간 일본 문화 유입을 강력하게 규제했다. 일본 대중문화는 '왜색(倭色)문화'로 불렸고, 척결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수입도 엄격히 금지됐다.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단계적 개방이 시작됐고, 2004년 사실상 완전 개방이 이뤄졌다.
개방 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뮤지션의 음반을 국내에서 구하려면 '정보'와 '인맥'이 필요했다. 저작권 개념도 희미했던 터라, 불법복제 복사판을 파는 곳도 있었다. 새로움을 동경했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음지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화를 즐겼다. 한글판 번역이 있을리 없던 시기, 이들은 사전을 뒤적이며 스스로 일본어를 익혔다.
#영어를 팝송과 영화를 통해 배운 사람들도 많다. 영어 단어나 문법을 잘 몰라도 노트에 들리는대로 가사를 한글로 받아적었다. '인어공주'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노래와 대사를 통채로 외운 이들도 상당수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6월 종료한 지상파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화 및 생활영어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88년부터 무려 36년간 전파를 탔는데, 이 방송에서 들려주는 팝송과 영화 대사를 통해 영어를 공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열풍이 심상찮다. 케데헌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골든'은 빌보드 메인 싱글(송) 차트 1위에 올랐다. 이는 국내 관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7월 한 달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박물관과 굿즈의 합성어)는 품절 대란을 겪고 있다. K팝 관련 상품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목욕탕 관련 상품 예약까지 함께 늘었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리 문화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면서,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도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이집트엔 한국어 수업 수강 대기자가 1300명에 육박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언어와 문화는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문자·문법과 어휘를 익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간이 되는 문화적 맥락과 삶의 방식까지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이 한국어의 세계화에 나설 적기다. 글로벌 시민들이 한국의 문화에 열광하는 이 때, 우리는 지속가능한 K컬처 성장의 기반이 될 한국어의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정부도 한국어 보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역할을 나눠 수행 중이다.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청은 한글학교를 통해 재외동포 자녀들의 한국어 및 문화 학습을 지원한다. 지난해 기준 110개국 1405개의 한글학교가 운영 중이다. 문화관광체육부는 산하 세종학당재단과 해외 거주 외국인들의 한국어·한국문화 교육을 담당·지원한다. 지난 6월 기준 87개국에 252곳의 세종학당이 운영 중인데, 지난해 전 세계 학당에서 온·오프라인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수강생은 21만명이 넘는다. 교육부는 해외 초·중등 교육과정에 한국어가 정규과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교육부는 체계적인 한국어 보급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해외 한국어교육 센터'를 신설하고, 이달부터 정식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기준 46개국 2526개 학교에서 약 22만 명의 해외 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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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3개 부처(외교부·문체부·교육부)는 정기적으로 해외 한국어 보급 관련 회의를 진행하며 업무를 조율하고 있다. 이제 한 발 더 나아갈 때다. 친한·지한 글로벌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춰 한국어를 확산해야 한다. 국가의 마스터 플랜이 있어야 한다.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한국어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더 많은 글로벌 이웃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돕자. 그것이 지속가능한 '문화 강국'으로 가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