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 초대석]안성은 도이치은행그룹 한국대표
안성은 도이치은행그룹 한국대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3대 외국계 투자은행가로 손꼽힌다. JP모간을 이끄는 임석정 대표, 모간스탠리 양호철 한국대표와 함께 선진 금융투자 전략을 국내로 들여와 시장에 공헌한 금융 전문가로 평가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안 대표에게 장관급 공로상을 표창했다. 금융허브추진위원회 자문위원과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 다년간 활동하고 ETF(상장지수펀드) 제도와 금융비전 수립을 도와 시장에 기여한 공로를 치하한 것이다.
안 대표는 2004년부터 10년간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 한국대표로 일하면서 은행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를 정상화하고 이들의 새 주인을 찾아준 실무자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무너졌던 국내 대표기업을 살려내 시장에 내놓은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 대표는 지난해 6월 도이치은행그룹으로 옮겨 1년 만에 M&A 자문 업무를 올 상반기 기준 1위로 끌어올렸다. 6조원에 매매된 오비맥주와 ADT캡스 2조원 인수, KB금융지주의 우리파이낸셜 인수가 최신작이다.
안 대표는 "도이치 한국대표로 사내 팀워크를 살리고 도이치가 독일 통일경제에 이바지한 노하우를 국내에 전하고 싶다"며 "지난 20년간 사회적 혜택을 누린 시니어그룹의 일원으로 우리 사회에 공헌할 일을 찾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 1년 만에 M&A 자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솔직히 운이 좋았습니다. 맡은 거래의 규모가 크다보니 실적이 두드러져 보여요. 오비맥주 매매는 모든 IB(투자은행)가 탐을 냈지만 거래가 기존 2009년 매매 당사자 사이에서 다시 이뤄져 옛 딜을 주선한 도이치가 다시 자문할 수 있었습니다.
ADT캡스 인수가 실적 중에는 사실 하이라이트입니다. 이건 칼라일 미국 본사의 인수 의지를 신뢰한 게 적중했습니다. M&A 자문사는 인수 시너지가 많거나 거래 의지와 동기가 강한 후보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후보에 자신의 자문 역량과 마케팅 요점을 잘 설득해야 하는데 이번엔 삼박자가 잘 맞았습니다.
우리파이낸셜 인수는 가격 범위를 제시하는 게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인수 자문사로 가장 큰 실패는 경쟁에서 이겼지만 2등보다 너무 높은 가격을 써낸 것입니다. 가격을 높이 불러 사라는 자문은 누구나 할 수 있죠. KB금융에 자문하며 의사 결정권자와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눴고 몇 가지 시나리오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 것이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독자들의 PICK!
- 도이치가 IPO(기업공개) 시장에선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는데요.
▶큰 고민입니다. 외국계 IB가 국내 IPO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비즈니스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업은행이 아닌 IB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비상장 주식을 시장에 데뷔시키는 IPO인데 이 종합예술에 대해 국내 시장은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요. 빅딜이 흔하지 않고 IB들은 출혈경쟁을 합니다. 수수료가 충분치 않으면 실무가 부실해지게 되고 그럼 신뢰가 무너집니다.

- 도이치는 특별히 강한 IB 전략이 있나요.
▶10년 전에는 미국계IB가 IPO 등 프라이머리(증권 발행) 업무에 강하고 유럽계는 세컨더리(증권 중개 및 유통)에 능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IB 사이의 자본격차가 커지며 유럽계의 인수 및 발행 역량이 더 줄었습니다. 도이치는 지난해 현대로템 IPO와 올 초 코라오홀딩스의 GDR(글로벌주식예탁증서) 발행을 책임져 IB 전략을 잘 유지했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도이치자산운용을 통해 국내 기업이나 연기금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거래도 돕고 있습니다.
- 도이치증권이 일으킨 2010년 11월11일 *'옵션사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도이치증권 홍콩 트레이더 일부가 코스피시장 마지막 동시호가 중 2조5000억원 규모의 매물을 던져 증시를 혼란에 빠뜨리고 450억원의 부당이득을 거둔 일)
▶사실 지난해 도이치에 돌아올 결심을 하면서 이런 평판에 대한 문제를 가장 고민했습니다. 안수 제인(Anshu Jain) 도이치 글로벌 회장이 저와 인터뷰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도이치가 한국에서 버는 돈은 글로벌로 보면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가 떨어뜨린 평판을 살려야 한다"고요. 제 대답은 "돈을 버는 것보다 브랜드를 살리는데 집중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간 내부정비를 어느 정도 마쳤습니다.
- 내부정비라면 어떤 것들에 집중하셨나요.
▶은행과 IB는 큰돈을 만지기에 올바른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소수의 잘못이라도 금융사 전체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임직원들 스스로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는 겁니다. 이를 위해선 업무환경을 개선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금융사 내에서 소외될 수 있는 후선지원 직원들도 다독였고 점차 고객대면 임직원들도 일대일 미팅으로 마음을 열었습니다. 도이치에는 아주 똑똑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포함해 전직원들이 화합하도록 묶는 게 제 소임입니다.
- 한국의 IB시장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테스트 마켓의 성격이 강합니다. 수수료의 절대 규모는 크지 않지만 IPO나 M&A, 채권발행, 파생상품 등 구사할 수 있는 금융상품들이 다양하게 잘 균형 잡혀 있는 시장입니다. 글로벌 IB 입장에서 보면 시장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전략을 경험하기가 좋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뒤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태평양 다른 지역에 진출하기도 유리하고요. 한국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 통일 대박론을 어떻게 보시나요.
▶정치적인 논쟁은 사양하겠습니다만 독일계 IB로서 통일 경험을 한국에 전수하고 공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올해 하반기부터 독일의 통일 전문가를 국내로 초빙해 민관 실무자들에게 통일 과정에서 자본시장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다양한 사례로 제시하려 합니다. 도이치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강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육성하기 위해 우량한 기업에 대해 지분 투자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 노하우를 시장에 공유하려 합니다.
- 한국도 글로벌IB를 육성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데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해외IB를 인수하는 것입니다. 사실 도이치도 상업은행으로 시작했는데 1998년 미국계IB인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해 IB 조직을 늘리고 문화를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계 IB 중에 UBS와 크레디트스위스, 바클레이즈 등은 금융위기 이후 IB를 줄이는 추세지만 도이치는 IB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유럽계 금융회사면서 IB로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독일이라는 강력한 홈마켓이 토대가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은 결국 기본적인 경제가 바탕이 돼야 발전합니다. 국내 IB가 발전하려면 국내 경제가 성장해야 하는 거죠. 이 토대 위에 경쟁력 있는 글로벌IB의 조직과 문화를 받아들이는게 필요하구요.
- 중견기업 구조조정이 한창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구조조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M&A 시장은 오로 하반기에도 활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최근 삼성그룹이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 상장 계획을 밝히면서 주식발행시장도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고요. 대기업들이 투자에 미진한데 물밑으로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M&A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A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미국 GE나 P&G처럼 M&A를 일상적인 경영활동처럼 수행하며 학습량을 늘려야 실력이 늡니다. 1990년대에 P&G를 자문한 적이 있는데 내부 M&A팀이 IB보다 일을 더 잘하는데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