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조원이 부족한데 자구안으로 애매하게 7000억원을 갖고 오면 어떡하나. 그렇다면 살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지난해 8월초, 금융위원회와 채권단은 한진해운을 두고 이런 고민을 했다. 한진해운의 기존 부실을 해소하기 위한 부족자금은 1조~1조3000억원. 용선료 조정, 선박금융 유예, 사채권자·채권은행 채무조정 등 4가지 과제를 성공한다고 전제할 때 필요한 부족자금이었다.
한진그룹측이 자구안으로 1조원에 다소 못 미치는 7000억원을 갖고 온다면 어떡하나, 금융당국은 고민을 했다는데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고민이 됐다. 한진측이 지난해 8월24일, 25일, 29일 세 차례 수정해 들고 온 자구안은 많아야 5000억원이었다. 그것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2000억원 밖에 없었다. 대주주는 경영권에 대한 미련도 끝내 못 버렸다. 게다가 4가지 채무조정은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입장에선 조금 억울하긴 했다. 침몰하는 한진해운을 떠맡아 이미 8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국내 1등, 세계 7등 해운사를 "정부도 망하게 내버려 둘 수 없을 것"이란 자신감도 작용했을 터다.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 느긋했던 이유다.
하지만 세계 7위 한진해운은 '빈껍데기'였다. 사용하고 있던 155척의 선박 중 95척이 시장가보다 80% 비싼 사용료를 내는 용선이고 직접 보유한 배는 60척에 불과했다. 이 마저도 2조5000억원이란 막대한 빚(선박금융)에 담보로 잡혀 있었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현대상선에 추가로 1조원이 투입됐는데 한진해운을 살리려면 이보다 수 배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는 "소유주가 있는 기업의 유동성은 기업 스스로 조달한다"는 구조조정 원칙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동일하게 적용했다. 현대상선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유동성 마련에 최선을 다했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사재 300억원을 내놨다. 경영권도 포기했다. 그에 비해 조 회장은 정상화 의지조차 부족해 보였다. 한진해운을 잃고 우리가 얻은 교훈은 명확하다. 자구노력도, 경쟁력도 없는 기업에 무턱대고 혈세를 투입하지 않겠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이 지켜졌고 앞으로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