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팔았을 뿐인데" 124억 배상부터...빨라진 피해구제, 늦는 책임규명

"그저 팔았을 뿐인데" 124억 배상부터...빨라진 피해구제, 늦는 책임규명

방윤영 기자, 김나경 기자, 조철희 기자
2026.09.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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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투자상품 사고, '책임의 시차' (종합)

[편집자주]  투자상품 사고가 터지면 판매사가 먼저 배상하고 비판도 집중된다. 하지만 뒤따른 소송에선 운용사 등 다른 회사 책임이 뒤늦게 드러난다. 투자자는 빨리 구하되 책임도 빨리 가릴 수는 없을까. 배상과 책임 사이의 '시차'를 짚어본다.

"홈플러스 전단채도 선배상"…피해구제 빨라졌지만 책임규명 '장기전'

투자상품 사고, 빨라진 피해구제 vs 늦은 책임규명/그래픽=김지영
투자상품 사고, 빨라진 피해구제 vs 늦은 책임규명/그래픽=김지영

홈플러스 전자단기사채(전단채)와 관련해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투자자에게 판매사가 먼저 배상하고 이후 실제 손실이 확정되면 정산하는 '선배상 후정산' 방안을 금융당국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판매사가 먼저 배상한 뒤 운용사 등 다른 금융회사의 책임이 수년 뒤 법정에서 가려진다. 피해구제뿐 아니라 사고에 관련된 금융회사와 감독당국, 투자자까지 각자의 책임을 제대로 가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홈플러스가 회생절차를 밟고 있어 최종 손실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검사·제재 결과 전단채에 대한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투자자에게 배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간 시장에선 대규모 불완전판매 사태를 겪으면서 피해구제의 시간이 빨라졌다. 금융당국은 2021년 금융분쟁조정 절차를 개선해 다수의 유사 분쟁을 금융회사가 먼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투자자를 먼저 구제했다고 해서 사고에 관여한 금융회사들의 최종 책임까지 함께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옵티머스 사태는 피해구제와 책임규명의 시차를 보여준다. NH투자증권은 2021년 일반투자자 831명에게 원금 2780억원을 지급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권고한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 방식은 받아들이지 않고 투자자에게 원금을 지급한 뒤 수익증권과 관련 권리를 넘겨받는 사적 합의를 택했다. 이후 하나은행과 한국예탁결제원 등을 상대로 별도의 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에 나섰다. 투자자 피해구제와 금융회사 간 최종 책임 규명의 시계가 따로 움직인 셈이다.

판매사의 책임과 사고에 관여한 모든 금융회사의 최종 책임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용사·수탁사 등 여러 금융회사가 관여한 상품이라면 상품 발굴·설계부터 정보 작성·검증·운용·판매까지 각 회사가 실제로 맡은 역할과 잘못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책임도 거론된다. 금감원은 사고 발생 후 관련 금융회사를 검사·제재하고 투자자 피해구제에도 나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가 참여회사들의 책임을 조기에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절차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사상 최종 책임 비율은 법원이 판단하더라도 당국 검사 단계에서 각 회사의 실제 역할과 잘못을 보다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판매사가 적합성 원칙이나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도 "투자자를 우선 구제한 뒤에도 다른 참여회사와 책임을 놓고 수년간 소송해야 하는 구조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도 책임 논의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자 피해구제제도 개선 쟁점과 방향' 보고서에서 투자자 피해구제를 확대하더라도 투자자의 자기책임 역시 비중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 피해구제와 금융회사 간 책임규명을 별개의 시간표로 두기보다 함께 앞당길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자는 신속하게 구제하면서 판매사·운용사 등 참여 금융회사는 실제 역할과 잘못에 따라 책임을 지고, 투자자 역시 스스로 선택한 위험에는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피해구제의 시계가 빨라진 만큼 책임규명의 시계도 함께 빨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판매사만의 잘못 아니다"…헤리티지·라임 판결이 보여준 진짜 책임

금융투자상품 사고 관련 법원 판결 사례/그래픽=김현정
금융투자상품 사고 관련 법원 판결 사례/그래픽=김현정

투자상품 사고가 발생하면 투자자와 직접 맞닿아 있는 판매사의 책임이 가장 먼저 부각된다. 하지만 투자자 피해가 구제된 뒤 금융회사 간 책임을 가리는 법정에서는 누가 상품을 팔았는지만으로 최종 책임이 결정되지 않는다. 상품 발굴·설계부터 정보 작성·검증·운용·판매까지 각 금융회사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가 책임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된다.

◇124억 돌려준 현대차증권…1심은 JB운용 책임 90%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독일 헤리티지 펀드 환매 중단과 관련해 투자자에게 약 124억원을 돌려준 판매사 현대차증권과 운용사 JB자산운용 간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지난해 JB자산운용에 11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JB자산운용이 항소하면서 금융회사 간 책임을 둘러싼 다툼은 2심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JB자산운용이 작성한 상품제안서에 독일 현지 시행사의 역량·재무건전성과 신용도, 펀드 수수료 구조, 투자금 회수를 위한 안전성 확보 장치 등이 잘못 기재됐다고 보고 위탁판매계약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JB자산운용의 책임을 90%로 제한했다.

투자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돈을 먼저 돌려준 금융회사와 사고의 최종 책임을 지는 금융회사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대로 판매사가 상품 발굴이나 구조 설계 등에 관여했다면 판매 과정뿐 아니라 실제 관여한 행위까지 책임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라임 사태에서도 법원은 판매사 외에 운용사와 상품에 관여한 증권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2월 하나은행이 라임자산운용과 신한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하나은행의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파산채권을 약 389억원으로 확정했다. 법원은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과 신한투자증권, 임일우 전 신한투자증권 PBS사업본부장에게도 손해에 대한 공동 지급 책임을 인정했다.

하나은행은 라임 펀드 판매로 발생한 손해를 이유로 2022년 라임자산운용과 신한투자증권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신한투자증권은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총수익스와프(TRS) 자금을 제공하는 등 상품에 관여했다. 법원은 하나은행이 투자자 피해를 구제한 이후 제기한 소송에서 라임자산운용뿐 아니라 신한투자증권 측에도 책임을 인정했다.

헤리티지와 라임 사례는 투자상품 사고의 책임이 판매사·운용사라는 형식적인 지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품 발굴·설계·정보 작성·검증·운용·판매 과정에서 각 회사가 실제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가 최종 책임을 가르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금감원은 검사했는데…최종 책임은 다시 법정으로

문제는 각 금융회사의 책임이 투자자 피해구제 이후 장기간의 민사소송을 거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나은행의 라임 소송도 2022년 제기된 뒤 올해 2월 1심 판단이 나왔다.

금감원은 투자상품 사고가 발생하면 판매사뿐 아니라 운용사 등 관련 금융회사를 검사해 위법·부당행위를 조사하고 제재한다. 분쟁조정을 통해 투자자 피해구제에도 나선다. 하지만 당국의 검사·제재는 각 금융회사의 법규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데 그치고, 사고에 관여한 회사들의 실제 역할과 잘못을 하나의 책임 구조로 종합해 조기에 규명하는 데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당국이 검사 과정에서 여러 참여회사의 행위와 잘못을 상당 부분 확인하고도 금융회사들은 투자자 피해구제 이후 다시 민사소송을 통해 상대방의 책임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헤리티지와 라임처럼 법원에서 판매사 외 다른 금융회사의 상당한 책임이 인정되는 데까지 수년이 걸리는 배경이다.

물론 금융회사 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배상 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권한이 아니다. 그러나 금감원이 사고 발생 이후 판매·운용·수탁 등 관련 회사를 각각 검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품 발굴·설계·실사·정보 작성·검증·운용·수탁·판매 전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들여다보고 각 회사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디에서 잘못이 발생했는지를 보다 종합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에게 판매한 금융회사가 판매 과정에서 잘못했다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여러 금융회사가 상품에 관여했다면 각 회사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까지 함께 확인돼야 책임을 제대로 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민사상 책임 비율까지 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검사에서 확인한 사실관계를 금융회사 간 책임 규명에 보다 신속하게 연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당국 검사와 법원의 최종 판단 사이에서 각 금융회사의 실제 책임을 조기에 정리할 수 있다면 투자자 피해구제 이후 다시 수년에 걸친 소송으로 책임을 가리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韓, 사고뒤 수년간 책임 공방…영국·EU "상품설계부터 역할·책임 관리"

한국·주요국 투자상품 제조·판매 규율 비교/그래픽=이지혜
한국·주요국 투자상품 제조·판매 규율 비교/그래픽=이지혜

투자상품 사고 후 수년씩 걸리는 책임 공방을 줄이려면 금융당국의 검사 결과를 조기 책임 규명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이 판매사·운용사 등을 검사해 위법·부당행위를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상품 발굴·설계부터 검증·운용·판매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종합해 금융회사 간 책임 조정으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상품 설계 단계부터 참여회사의 책임을 미리 정해두는 영국·EU(유럽연합)·호주 등 해외 선진시장의 제도가 참고할 만한 모델로 꼽힌다.

◇해외 선진시장, 투자상품 설계부터 판매까지 하나의 과정으로 관리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금융상품을 설계·개발하는 금융회사가 상품 승인 절차를 갖추고 목표시장을 설정하도록 하는 '상품 거버넌스' 제도를 운용한다. 특히 여러 회사가 하나의 금융상품을 함께 만들 경우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서면 합의로 명시하도록 규정한다.

유럽연합(EU)의 금융상품시장지침(MiFID II)도 상품을 설계·개발하는 회사와 이를 판매·유통하는 회사의 역할을 구분한다. 상품을 설계·개발하는 회사는 목표시장과 유통 전략을 정하고 판매사가 상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판매사는 이를 토대로 상품의 특성과 목표시장을 파악해야 한다.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은 목표시장과 유통 전략 등 상품 거버넌스 과정에서 내린 판단의 근거를 문서화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도 2021년부터 '설계·유통 의무(DDO)'를 시행 중이다. 상품 발행사는 어떤 소비자에게 상품이 적합한지를 정한 목표시장결정서(TMD)를 만들고 이에 맞게 상품이 유통되도록 해야 한다. 판매·유통업자도 관련 판매 정보를 발행사에 전달하는 등 상품 설계와 판매 과정을 연계해 관리한다.

이들 제도가 사고 발생 이후 금융회사들의 민사상 책임 비율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품 설계·개발부터 판매 이후까지 참여회사들의 역할과 의무를 하나의 과정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국내 책임 규명 체계를 보완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는 평가다.

투자상품 사고, 빨라진 피해구제 vs 늦은 책임규명/그래픽=김지영
투자상품 사고, 빨라진 피해구제 vs 늦은 책임규명/그래픽=김지영

◇사전 책임 명확히 하고, 금감원 검사도 책임규명과 연결해야

투자상품 사고 이후 책임 규명을 앞당기려면 여러 금융회사가 관여하고 구조가 복잡해 분쟁 가능성이 큰 상품을 중심으로 각사의 역할과 책임을 사전에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품 판매 전 내부 위원회 등을 통해 어떤 검토를 거쳤는지 기록하고 상품 설계·운용에 관여한 회사와 판매사 등의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식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판매사와 상품 설계·운용에 관여한 회사, 수탁사와 위탁사 등의 책임을 내부적인 장치를 통해 규명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일정 수준 이상의 난도가 있는 상품은 사전에 검토하고 내부 위원회에서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문서로 남기는 한편 상품 설계·운용에 관여한 회사와 판매사의 책임도 사전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전에 책임 관계를 설정하면 감독·제재 과정에서도 이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전에 정리한 책임 관계를 사고 이후 책임 규명에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금감원이 금융회사 간 민사상 책임 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사 과정에서 각 회사의 실제 역할과 위법·부당행위가 확인된다면 이를 금융회사 간 책임 조정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을 권리는 보장하되 소송에 앞서 참여회사들이 책임을 조정할 수 있다면 피해구제 이후 다시 수년에 걸쳐 책임을 다투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투자자는 먼저 구제하면서 상품에 관여한 회사들의 책임은 사전에 보다 명확히 하고, 사고 이후 확인된 사실관계를 조기 책임 규명에 활용하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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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기자

안녕하세요. 증권부 김나경 기자입니다.

조철희 기자

안녕하세요. 증권부 조철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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