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에도 '적폐'가 있습니다. 저가수주와 경영진의 도덕 불감증 등은 조선 시황이 좋았던 시절 수면 아래에 있다가 한국 조선업계 추락 속도를 더욱 키웠습니다."
대선 이튿날인 지난 10일, A 조선사 관계자가 문재인 정부 출범의 화두로 떠오른 적폐청산을 주제로 기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한 말이다.
과거 가려졌던 정권의 잘못이 최순실 사태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 청산의 대상이 된 것처럼, 사상 최악의 '수주절벽'을 거치면서 조선업계의 적폐 민낯도 여실히 드러났다. 현재 진행 중인 업계의 구조조정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적폐 청산 작업의 일환이다.
그동안 조선업계의 적폐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던 이유는 청산을 주도하는 주체와 청산 대상인 객체가 동일했던 게 그 영향이 가장 컸다.
사실 적폐 청산의 주체인 해당 기업이 적폐 양산의 주체이기도 하다. 또 업체 관리·감독 부실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국책은행도 적폐청산의 칼을 쥔 주체다. 분명 존재하는 저가수주임에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묻지 못하거나 기업 운영에 실패한 경영진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면서 부실을 키웠다. 그러다 보니 '셀프 청산'이 될 리가 없었다.
올해 1~4월 한국 조선업계의 선박 수주량은 지난해보다 무려 6.15배 급증하는 등의 조선업 시황 회복의 조짐은 조선업계의 적폐 청산에 있어서 만큼은 청신호가 아니다. 적폐의 싹을 잘라야 하는 시점에 호황기를 틈타 다시 그냥 덮고 넘어가려는 과거의 악습이 되풀이될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의 시선은 벌써 시황 회복의 기류에 어떻게 올라타느냐에 쏠린다. B조선사 관계자는 "시황 회복은 중장기적으로 보면 기정사실"이라며 "영업력 확대 등에 총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업 부활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지만, 자칫 이 때문에 해소하고 넘어가야 할 적폐를 향한 시선이 분산되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뿌리 깊게 쌓여있는 적폐의 해소 없이 시황의 싸이클이 다시 밑바닥으로 향할 때 충격이 배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근본적 체질 강화를 통한 조선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선 '적폐' 청산이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조선업 부활을 위해 국민들의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