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위기를 기회로

[기자수첩] 위기를 기회로

임찬영 기자
2025.09.11 04:11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300여 명이 한꺼번에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그룹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와 기술 인력들이 대거 단속에 걸린 것이다. 단순 사무 인력이 아니라 설비 설치, 시운전 같은 핵심 업무를 맡았던 이들이다.

현장은 순식간에 멈췄고 공사 일정은 기약 없이 밀리게 생겼다. 대체할 만한 인력이 국내에도 현지에도 없어서다.한국에서 급히 인력을 충원해 보내도 비자 문제가 다시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현지에서 채용하자니 필요한 기술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뒤늦게 외교력을 총동원해 미국과 비자 문제 협상에 나섰다. 한국에는 전문직 비자인 H-1B나 주재원 비자인 L-1 전용 쿼터가 없다. 인도와 중국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 속에서 한국 인력은 늘 후순위였다. 무역·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E-1, E-2 비자는 해법이 되긴 어렵다. 조약국 국민이면 신청은 가능하지만 스폰서나 투자 요건이 따라붙어 일반 근로자가 쓰기엔 문턱이 높다.

호주처럼 전용 전문직 비자를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이유다. 호주는 미·호주 FTA 체결 때 E-3 비자를 얻어냈다. 덕분에 H-1B 추첨 없이도 전문 인력 1만500명이 매년 안정적으로 미국에 진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같은 FTA 협상에서 이 기회를 놓쳤다.

출장길에서 늘 쓰이던 단기 체류 비자인 B-1 문제도 다시 드러났다. 미국 국무부 매뉴얼에는 장비 설치와 시운전이 가능하다고 돼 있지만 현장 단속은 훨씬 엄격했다. 제도와 집행이 엇갈린 탓에 기업과 인력만 피해를 본 꼴이다.

이번 사례를 일회성으로 지나치는 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기술 인력이 안전하게 오가고 기업이 예측할 수 있는 환경에서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게 한국의 투자와 기술 협력이라면 정부도 마땅히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

한국인 전용 전문직 비자 신설, H-1B 내 쿼터 배정 같은 제도 개선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제 더 이상의 편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구동성으로 비자 리스크를 말한다. 비자 문제를 외교로 풀지 못하면 같은 일은 무한반복될 수 있으니 정부가 이참에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임찬영 기자

산업1부에서 자동차, 항공, 물류 산업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