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왼쪽에 ‘숙의’, 오른쪽에 ‘경청’이라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두고 공론화위원회가 모집한 시민참여단 토론회장의 풍경이다.
시민참여단은 이달 29일 2박 3일간의 합숙토론과 2차 숙의 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8월 3일 최종 설문조사에 따른 결과 발표만이 남았다. 결과에 따라 또 다시 대입 개편안을 둘러싼 후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사회에서 입시는 풀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다. 학벌이 한 사람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믿음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탓이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자신의 처지에 따라 입시정책의 호불호가 갈리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정책 지향점도 제각각이다.
수십년동안 입시제도를 변경했지만 ‘구멍’은 생겼고, 그 틈을 파고든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의 싸움은 지속됐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처럼 답이 명확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의미다.
물론 교육부의 일방적 정책 발표가 아닌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시도는 높이 살만하다. ‘숙의’, ‘경청’이란 말에서 이 같은 의지가 묻어난다.
다만, 공론화를 통해 결정할 주제인가는 다른 문제다. 공론화위가 던진 수시·정시 비율, 수능과목 절대·상대평가 등의 문제 자체가 대학교마다 각각의 사정에 따라 적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탓이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주기 어려운 것을 공론화로 힘을 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도는 좋았는데 첫 발을 잘못 뗀 셈이다. 결국 공론화 과정부터 끊임 없는 이해집단 간 ‘이전투구’를 양산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학교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 방안’을 포함, 하반기에는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 ‘학교폭력 기재 방안’에 대한 정책 숙려도 진행될 예정이다. 공론화 ‘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교육정책이 ‘공론화’로 떠넘겨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육당국이 시민참여라는 ‘허울’ 아래 민감한 문제에 대해 ‘면피’로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왜 국민적 합의를 모으겠다는 선의가 불편하게 느껴질까. 결국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처럼 공론화 결과물이 틀 안에서 끼어맞추기로 끝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놓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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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테스는 아테네를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아 침대에 누이고 키가 침대보다 길면 다리를 자르고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늘려서 모두 죽였다. 지금의 숙려를 바탕으로한 공론화위의 행보가 물론 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와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정해진 틀안에서 끼어맞추기의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좋은 합의를 위한 공론화는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지 경청하고 숙려하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