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접는 수형자, 일당 1억5000만원?..."실패 인정하고 제도 바꾸자"

봉투 접는 수형자, 일당 1억5000만원?..."실패 인정하고 제도 바꾸자"

오석진 기자, 양윤우 기자, 정진솔 기자, 이혜수 기자
2026.05.30 06:42
[MT리포트]구멍-많은-노역제도/그래픽=김현정
[MT리포트]구멍-많은-노역제도/그래픽=김현정

죄를 저질러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벌금을 내지 못하는 수형자를 노역장에서 일하게 하는 노역제도가 구멍투성이다. 노역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경우 등이 많아 교정시설에서 무상 숙식을 하고 벌금을 탕감받는 사례가 늘어난다. '황제노역' 문제도 여전하다. 조속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 제69조는 벌금을 선고할 때는 동시에 그 금액을 완납할 때까지 노역장에 유치할 것을 명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를 환형유치제도라고 한다. 노역장 유치자들은 교정시설에서 일반 수용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이 규정은 형법이 만들어진 1953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벌금을 탕감받기 위해 교도소 내 작업장에서 쇼핑백 봉투접기나 박스포장, 봉제 등 단순 노무에 참여해야 한다. 교정시설 내 청소나 환경미화를 하기도 한다.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 4시간씩 진행한다.

문제는 벌금을 내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노역을 하기 힘든 유치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노역장에서 건강 문제를 호소하면 정부가 치료해줘야 한다. 받아야 할 벌금보다 병원비로 나가는 세금이 더 많은 일이 종종 생긴다. 최근 비교적 소액의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60대가 신부전증 등을 호소해 국가가 1480만원의 의료비를 지출한 일도 있었다.

교정시설 노역장에서 벌금을 대신하는 유치집행 비율은 2015년 14.33%에서 2024년 43.94%로 급증했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두명 중 한명은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장을 찾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교정시설 과밀화 등과 겹쳐 노역자에게 시킬 일이 줄어들고 있다고 호소한다.

2015~2024년 벌과금 처리 상황/그래픽=김지영
2015~2024년 벌과금 처리 상황/그래픽=김지영

시킬 일이 아예 없으면 국가가 무상 숙식을 제공해주고 범죄자들의 형벌을 탕감해주는 셈이 된다. 벌금형이 경제적 타격을 주는 형벌인데 교도소에서 먹고 자며 벌금을 탕감받는 기형적 구조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안동교도소장을 지낸 금용명 교도소연구소장은 "교정시설이 이미 과밀화한 상태에서 인원이 계속 공급돼 이런 현상이 악화하고 있다. 노역제도가 형벌로서 전혀 기능을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황제노역 문제도 여전하다.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는 벌금 1465억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고 라 대표가 벌금을 낼 수 없다고 하면 노역장에 유치된다. 이 경우 하루 1억4651만원의 벌금이 감면된다. 법적으로 3년 이상 노역장에 유치할 수 없어서다. 연봉으로 따지면 534억원이 넘는다.

노역 대신 사회봉사를 시키는 제도가 있지만 활용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회봉사 집행 비율은 1% 미만이다. 사회봉사는 고정업무가 있지 않고 군대의 대민지원처럼 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농촌 일손이 부족할 땐 모내기에 투입되는 식이다. 다만 건강상 이유로 노역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원봉사 역시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같은 죄를 저질렀더라도 소득, 재산에 따라 벌금의 총액을 다르게 하는 일수벌금제를 도입하자는 대안도 제시된다. 범죄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따라 벌금 일수를 정하고 피고인의 소득과 경제사정을 따져 하루 벌금액을 정하는 것이다. 같은 신호위반에 누구는 벌금 100만원을, 누구는 벌금 5만원을 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개인의 경제 사정이나 소득 수준을 파악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역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실패했다"며 "외국처럼 엄격하게 재산을 강제집행하는 능력을 더 갖추는 등 실효성이 있는 노역제도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진=Chat GPT
/사진=Chat GPT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오석진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오석진 기자입니다.

양윤우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양윤우 기자입니다.

정진솔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정진솔 기자입니다.

이혜수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이혜수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