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투자규모 큰 대체투자 뭉쳐야…올 수익률 두자릿수 낼 것"

"한국투자공사(KIC)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홍철 KIC 사장은 KIC와 인연이 깊다. KIC 신설을 가장 먼저 제안한 이가 안 사장이다. 그는 2000년 국제금융센터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당시 김용덕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에게 한국에도 싱가포르투자청(GIC)과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제금융센터는 국제 금융 동향에 너무 어두워 외환위기를 맞았다고 판단한 정부가 신설한 조직이었다. 안 사장은 국제 금융시장의 자료 수집이 주업무인 국제금융센터로는 글로벌 시장의 내밀한 정보를 발 빠르게 얻는 데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시장을 리서치하는 정도로는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의 핵심 정보를 얻으려면 시장의 플레이어, 투자 주체가 되는 수밖에 없어요." 안 사장의 제안은 당시 외환보유액이 많지 않아 시기상조란 의견이 제기되면서 보류됐다가 5년 뒤 KIC 설립으로 실현됐다. 안 사장은 2005년에 신설된 KIC의 감사직을 맡으면서 두 번째 인연을 맺었다. 그는 감사 시절 KIC의 대표적인 투자 실패로 꼽히는 메릴린치 투자를 앞장서 반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 번째 인연은 지난해 12월에 KIC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뤄졌다.
안 사장은 취임한지 채 1년도 안 돼 내로라하는 글로벌 국부펀드가 참여하는 '공공펀드 공동투자 협의체(CROSAPF·크로사프)'를 결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취임 이후 KIC의 투자 수익률도 여타 연기금보다 월등히 높다. KIC에 대한 오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안 사장을 만나 KIC의 성과와 향후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 글로벌 국부펀드가 공동투자를 위해 조직을 만든 것은 처음인데요.
▶ 쉽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국부펀드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11번 해외 출장을 나가 22개 기관을 만났어요. 직접 방문하지 못한 곳에는 제안서를 보내 결과적으로 30개 국부펀드를 모았습니다. 사실 노르웨이투자관리청(NBIM)이나 중국투자공사(CIC)처럼 운영자산이 많은 국부펀드는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에서 투자할 대상을 갖고 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공동투자의 필요성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투자관리청은 최근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를 시작했는데 주로 미국과 유럽만 합니다. 잘 모르는 아시아 등으로 투자처를 확대하려면 다른 국부펀드와 힘을 합하는 게 필요합니다. 게다가 다른 국부펀드들이 뭉치기 시작하는데 그냥 있으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국제무대에서 달라진 한국에 대한 인식도 도움이 됐습니다. KIC는 운용규모(지난해 말 기준 720억달러)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는 전세계에서 15위권이니까요.
- 공동투자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KIC에 와서 보니 공동투자의 연평균 수익률이 20%에 달했습니다. 왜 그런가 보니 규모의 경제가 작용했습니다. 이제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자산 투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동산, 인프라,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 대체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금리 기조로 채권에서 수익을 얻기가 어려워지고 있고 그렇다고 주식 비중을 과도하게 높일 수도 없기 때문이죠. 대체투자 중에서도 부동산과 인프라는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단독으로 투자하는 것보다 여럿이 공동투자할 때 이점이 많습니다. 운용 규모가 작으면 잘못된 투자 하나로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있는데 공동투자가 이런 위험을 덜어줍니다. 리스크는 나누고 수익률은 올리는 투자가 가능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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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사프에서 공동투자는 어떻게 이뤄지게 되나요.
▶ KIC 내에 투자 협의팀이 있습니다. 이 팀에서 국내에 유망한 투자 대상을 발굴해 크로사프 사이트에 올립니다. 다른 국부펀드도 같은 방식으로 자국의 투자 유망처를 올려 정보를 공유합니다. 사이트에 올라온 여러 투자 정보를 보고 투자 의향이 있으면 정보를 올린 국부펀드에 연락해 공동투자를 협의하는 방식입니다. 과거에도 국부펀드들끼리 공동투자를 진행한 적이 있지만 개별 건별로 우연하게 이뤄졌습니다. 크로사프는 공동투자를 목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다릅니다.
- KIC는 해외에만 투자할 수 있는데요. KIC가 국내의 좋은 투자 대상을 크로사프에 제안해도 정작 KIC는 투자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게 안타까운 점입니다. 한국투자공사법에 KIC는 위탁받은 자산을 외국에서 외화표시 자산으로 운용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그러니 국내 투자 정보를 제공하고 정작 KIC는 투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투자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져 국내에 해외 국부펀드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우려도 되고요. 지금도 해외 국부펀드에서 한국에 좋은 투자 대상이 있으니 같이 투자하자고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 KIC가 직접 투자하지 않고 자금을 맡겨 위탁 운용하는 경우는 어떤가요.
▶ 위탁운용사도 국내 투자를 못합니다. KIC가 맡긴 자금에 대해서는 위탁운용사들이 아예 국제적인 벤치마크에서 한국을 빼고 투자합니다. 글로벌 채권지수라고 해도 이 지수를 추종할 수 없는 거죠. 글로벌 벤치마크의 한국 비중만큼 국내에 투자한다면 수익률을 더 올릴 수 있을텐데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제 생각에는 KIC가 직접 투자하지 않고 위탁 운용하는 경우 주식이나 채권 투자의 글로벌 벤치마크 범위 내에서 국내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해외 국부펀드들은 어떤가요.
▶ 해외 국부펀드들은 상황에 맞춰 자국 내 투자를 허용합니다. 노르웨이 정부연금기금(GPFN)이나 싱가포르 테마섹홀딩스가 대표적입니다.
- 올 상반기 KIC의 투자 수익률이 상당히 좋다고 들었습니다.
▶ 연초부터 지난 7월 말까지 36억달러(3조7000억원)의 투자수익을 거뒀습니다. 이달 초 수익률은 7%가 조금 넘습니다. 올해 최종 목표는 두자릿수입니다.
- 국내 다른 연기금과 공제회의 수익률이 대개 4%대입니다. 투자 성과가 높은 비결이 있는지요.
▶ 다른 연기금들은 채권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높고 주식 비중은 20% 남짓으로 낮습니다. 해외 투자 비중도 낮고요. 반면 KIC는 주식투자 비중이 절반입니다. 채권 비중은 이보다 적은 40%, 대체투자가 10%입니다. 앞으로 채권은 투자 규모는 유지하되 비중은 10% 정도로 대폭 낮출 생각입니다. 신규로 늘어나는 자금은 주식과 대체투자에만 투입할 계획입니다.
- 채권 비중을 10%까지 줄이면 너무 적은 것 아닌가요.
▶ 올 7월 말 기준으로 운용자산이 756억달러(77조4000억원)인데 채권이 300억달러 정도 됩니다.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앞으로 주식 비중은 50~60%로 유지하고 대체투자 비중은 30% 수준까지 늘릴 생각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체투자의 수익률이 가장 높고 다음이 주식입니다. 장기 수익률이 가장 저조한 투자 대상이 채권입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 미국 대학의 기금운용 수익률이 높은 것도 주식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KIC는 장기 자금이라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좋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 자금 전체가 해외에 투자되고 있는데 주식과 대체투자 규모를 늘리려면 해외 사무소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 현재 뉴욕과 런던에 사무소가 있는데 운용 자산이 더 늘어나면 우선적으로 베이징에 사무소를 두고 싶습니다. 중국 시장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데다 중국의 모든 정책이 베이징에서 이뤄지니까요. 향후 해외 사무소를 더 늘린다면 동남아시아 시장의 거점으로 싱가포르, 중동과 동유럽, 북아프리카를 포괄하는 거점으로는 터키의 이스탄불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당장 추진할 순 없고 운용자산이 늘어나면 검토해봐야 합니다.
- 국내 운용사에도 자금을 맡겨 운용하고 있는데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이 있는지요.
▶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에 7000만달러씩을 맡겨 중국 주식에 투자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KIC의 설립 취지 중 하나가 국내 금융시장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인데 KIC의 자금이 국내 운용사의 해외 투자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다만 아직 국내 운용사들의 해외 투자 경험이나 노하우가 부족해 역량을 키우는데 좀 더 주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국내 운용사의 해외 투자 역량이 커지고 KIC의 운용자산이 늘어나면 그에 따라 국내 운용사에 맡기는 자금 규모도 늘릴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