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믿었다가 126억 날린다? "일 더 늘어" 푸념…'워크슬롭'이 뭐길래[트민자]

AI 믿었다가 126억 날린다? "일 더 늘어" 푸념…'워크슬롭'이 뭐길래[트민자]

정혜인 기자
2025.10.07 15:13
[편집자주] 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사진=퍼블렉시티 AI
/사진=퍼블렉시티 AI

"AI(인공지능)를 믿고 맡겼는데, 결국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서 시간이 더 걸렸다."

최근 AI를 사용하는 기업 사무실에서 흔히 들리는 푸념이다. 업무 혁신과 생산성 제고를 기대했던 AI 사용이 오히려 현장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다. '워크슬롭'(Workslop·업무 쓰레기)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겉으론 완성도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쓸모없는 저품질의 AI 생성물을 'AI 슬롭'으로 부르는데, 업무 환경에서는 이를 '워크슬롭'이라고 한다. 핵심 내용이 빠지고 부정확한 내용이 가득한 AI 결과물을 다시 수정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 반복돼 시간 절감 효과가 사라지고 근로자들이 이중 부담을 겪게 되는 현상이다.

비용 늘리고 조직 신뢰 무너뜨리는 '워크슬롭'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와 스탠퍼드대 소셜미디어 연구소, 베터업랩스(BetterUp Labs)가 공동으로 미국 내 정규직 11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워크슬롭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소매업체의 임원은 "(AI가 만들어낸 자료 내) 정보를 추적하고 직접 조사해 확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일을 다시 해야 했다"고 말했다.

/사진=베터업랩스
/사진=베터업랩스

조사에 따르면 한 건의 워크슬롭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2시간. 이를 급여로 환산하면 직원 1인당 월 186달러(약 26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직원 1만명 규모의 기업이라면 연간 900만달러(126억162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허공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HBR은 분석했다.

워크슬롭은 단순히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직 내 신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AI로 '워크슬롭'을 만든 동료를 "덜 유능하다"라거나 "신뢰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모든 업무에 AI를 일괄 적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면 직원들은 깊은 고민 없이 AI가 작성한 결과물을 그대로 제출하기 쉽고 이는 곧 동료에게 불필요한 작업을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효율성은 떨어지고 조직 내 불신은 커진다.

HBR은 "사람은 더 쉬운 방법을 찾으려는 습관이 있다. 이 때문에 워크슬롭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이런 나쁜 습관을 대규모로 확산시키고,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는 동시에 동료 간 신뢰와 협력을 약화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짚었다.

"뒤처질까 불안"…무분별한 속도 경쟁이 만든 부작용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가 6월2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AI 데이터 클라우드기업 스노우플레이크의 연례행사인 '스노우플레이크 서밋 2025'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가 6월2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AI 데이터 클라우드기업 스노우플레이크의 연례행사인 '스노우플레이크 서밋 2025'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전문가들은 미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퍼진 AI 투자에서의 속도 경쟁과 일자리 위협 경고를 '워크슬롭'의 등장 배경으로 꼽는다. 기업들이 AI를 쓰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에 휩쓸려 목적과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AI 기술을 도입한 게 부작용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AI 열풍을 주도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최고경영자)는 "가장 빨리 (AI를) 도입하는 기업이 승리한다. 그냥 하라(Just do it)"고 강조했고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는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기업들은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조언과 경고에 따라 AI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에 따르면 그 결과 AI 기반으로 운영되는 기업 수가 지난해에만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갤럽 조사에서는 미국 내 근로자들의 AI 활용 비율이 2023년 21%에서 올해 2분기에는 40%로 높아졌다. 유엔은 글로벌 AI 시장 규모가 10년 동안 250배 이상(2023년 1890억달러→2033년 4조8000억달러) 성장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투자 열풍과 달리 실제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MIT 미디어랩이 기업의 생성형 AI 투자 사례를 조사한 결과, 300억~40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의 AI 투자 중 95%는 전혀 투자 수익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베터업랩스는 "워크슬롭은 준비 없이 AI를 활용해 쉬운 길로 가려는 조직에 경제적·사회적 부담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를 예방하려면 기업 리더들은 목적과 의도를 갖춰 신중하게 AI를 활용하는 모범을 보이고 명확한 규범과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또 AI를 편한 업무를 위한 '지름길'이 아닌 '협업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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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인 기자

국제부 정혜인 기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 '트민자' 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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