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중순 한 중소기업 지원 공공기관장과의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다. 1주일 전 설 연휴 마지막날 정부의 기습적인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있었다. 화제는 자연스레 정부 조치의 적절성 여부로 흘렀다. 경직된 대북 정책 탓에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비판 여론이 많던 시기다.
그런데 당시 공공기관장의 발언은 놀라웠다. 개성공단 폐쇄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일반적 수위를 넘는 노골적인 이념적 성향을 드러냈다. 예컨대 대북 정책과 연관 지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대해 '빨갱이 척결'이란 논리로 펼치는 식이었다. 당시 자리를 함께 한 후배기자와 귀를 의심했을 정도였다.
지난달 중순 그 공공기관장과 다시 만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온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넘치던 시기였다. 그는 뜨겁게 달아오르던 촛불집회를 일부 세력의 선동과 언론의 과장 보도에 따른 결과물로 판단하고 있었다.
최근 만난 취재원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최근 그 기관장과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기관장이 다소 뜬금없이 촛불집회를 비난하고 현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찬성한다는 얘기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을'은 듣기가 매우 거북했으나 '갑'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표정관리 하는데 진땀을 뺐다고 했다. 유사한 사례가 더 있는 걸 보면 그의 신념은 확고해 보인다.
그 기관장의 극단적 생각에 동조할 수 없으나 자연인으로서 그런 철학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 문제는 공공기관장 자격으로 나간 공적 자리에서 업무와 관계없는 얘기로 이념적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실제 해당 기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민간업체는 그 기관장의 정치적 성향을 감안해 비위 맞추듯 일 할 수밖에 없었다는 푸념도 한다. 균형감을 잃은 공공기관장이 혹시 공공의 이익보다 특정인이나 특정성향의 그룹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한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한 노(老) 시인이 '구역질나는'이라고 표현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이라는 야만도 그런 식으로 잉태됐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