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여론조사와 치킨

[기자수첩]여론조사와 치킨

정영일 기자
2017.05.08 18:14

[the300]

19대 대선을 하루 앞둔 8일, 아침부터 치킨 생각이 났다. ‘5‧9 대선’ 개표 방송을 보면서 먹고 싶은 음식 1위로 치킨이 꼽혔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흔한 마케팅 업체의 '얼치기' 조사결과가 아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이같은 자료를 냈다. 전국 성인남녀 502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고 인구비례에 맞춰 보정도 이뤄졌다. 선거법에 따른 합법적인 보정이다. 무선(80%)과 유선(20%)을 혼용했고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을 사용했다. 조사 대상만 늘리면 일반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와 큰 차이가 없다. 이 정도면 싸게 해도 150만~200만원은 든다.

왜 이런 조사를 진행했을까. 리얼미터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의뢰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라디오를 통한 공표 형식을 취했을 뿐 사실상 리얼미터의 자체조사라는 게 중론이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와 선거 여론조사 관련 기구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껄끄러운 관계가 눈에 들어온다. 이 회사는 절차를 밟지 않고 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최근 과태료 1500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회사측은 "정책 관련 조사였는데 후보 이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선거관련 여론조사로 분류됐다"며 억울해 했다.

이 회사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기획도 선거법에 가로막혀 발표가 투표 이후로 미뤄졌다. 이른바 ‘투표 예측 프로젝트’였다. 지난해 총선 결과 예측에 실패한 이유를 기존의 여론조사 기법으로는 부동층의 표심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고 '거짓말탐지기'와 유사한 장치로 이를 보완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여론조사의 일부라는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며 ‘예측’ 자료를 투표 이후 공개하게 됐다.

규제의 덫으로 괜찮은 정보의 제공과 소비가 막힌 셈이다. 여론조사는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보장한다. 규제의 대상으로만 삼을 것은 아니다. 경쟁을 시키든, 지원을 하든 보다 정교하고 보다 현실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선거관리의 일환이다. 자꾸 틀리고 문제를 일으키는 여론조사가 밉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치킨' 관련 조사만 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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