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심한데요"라며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하나가 한 증권사에서 최근 낸 업종 분석리포트를 들고 찾아왔다.
들어보니 동종업계 경쟁사 2곳의 목표주가 산정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데 A사엔 PER(주가수익비율) 20배, B사엔 15배를 적용했다. 1분기 실적 전망도 B사는 시장추정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본데 반해 A사에 대해선 시장 추정치를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리포트를 낸 증권사의 계열 자산운용사가 A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주요주주"라고 덧붙였다. 관계사 펀드 운용실적을 신경 쓴 나머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단 주장이다. 업황 변동에도 불구하고 2년 넘게 A사에 대해서만 후한 목표가를 유지하고 있는 건 "도를 넘어섰다"고 꼬집기도 했다.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는 "수익만 보면 그렇지만 보유자산을 반영했다"고 항변했다. A사의 현금성 자산을 고려해 목표주가를 설정했다는 설명이다. "현금성 자산을 반영하면 이익에 비해 현 주가가 싸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포트를 작성할 때 계열 자산운용사의 보유 여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제보자의 의심과 작성자의 변명. 어느 게 더 합리적인지는 리포트를 읽을 투자자가 결정할 문제다. 더 중요한 건 이 같은 의심이 쉽게 나오는, '할 말 제대로 못 하는' 애널리스트들의 현실이다.
"예전엔 애널리스트가 진짜 무서웠다"는 기업들의 회상에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한 명은 "요즘은 제일 만만한 게 애널리스트"라고 화답했다. "기업에 '까칠한' 리포트를 보기 어렵다"고 하자 "요즘 누가 목표가를 팍팍 낮추고 매도의견을 내요. 한동안 리포트가 안 나오면 팔라는 소리로 알아 들어야지"라고 말했다.
한번은 목표가를 확 낮춘 리포트를 냈더니 영업창구부터 시작해 온갖 부서에서 "날 죽이려는 거냐"는 거센 항의가 날아왔다고 한다.
장기간 불황을 겪고 있는 증권업계는 앞다퉈 리서치센터 규모를 줄이고 있다. 증권업계 불황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개인투자자들의 직접 투자 감소에 따른 수수료 수익 하락이다. 그 뒤에는 증권사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도 있다. 리서치센터 축소로 입에 재갈 물린 애널리스트들과 그에 따른 불신이 악순환을 만드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