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경제단체 임원과 식사를 함께 했다. 대화가 요새 시국으로 흐르자 그는 "기업하기 딱 좋을 때"라고 했다. 농반진반으로 넘길 참인데 뒤따른 설명에 뼈가 있었다. "정부가 일을 안 하잖아요." 폭소가 터졌다.
탄핵정국과 조기대선, 검찰의 전방위 기업 수사가 기업하기에 녹록한 환경일 리 없다. 중국의 경제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악재도 겹쳤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손을 놓으니 기업할 만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 요샛말로 '웃픈' 일이다.
진보와 보수정부가 교차한 반세기 동안 이 웃픈 상황은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 됐다. '손톱 밑 가시', '규제전봇대'를 뽑겠다고 공언한 보수정부조차 몽땅 헛것이었다는 걸 누구보다 기업들이 잘 안다.
우리 정치사에서 기업은 늘 통제의 대상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기업이 정부의 경제 파트너였던 대목을 찾기 어렵다. 사농공상의 조선시대 유물이 21세기에도 흐른다.
권위주의 시대를 그리워한 정치인들은 음습한 정경유착의 통로로 기업을 전용했고 그 시대를 관통해 산 신진 '486'은 반기업 정서를 무기로 휘두른다. 선거정국이 되자 앞다퉈 글로벌 경쟁력과 혁신을 내세우며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요즘 현실이 낯설다 못해 서글플 지경이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방향을 향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낡은 이념과 선입관에서 창의력이 발현되지 않듯 기업을 규제로 재단하는 토양에서 '한국판 애플'을 채근할 순 없다.
삼성전자(201,000원 ▼5,000 -2.43%)가,현대차(478,500원 ▼11,000 -2.25%)가 글로벌 일류를 달리면서도 명품기업 대열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직시할 때다. 피터 드러커의 지적대로 "관리(management)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부분이 정작 사람들이 일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인 구조에서 정부와 기업의 '콜라보'를 바라는 것은 사치다.
대선을 앞두고 교육부 폐지 공약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수십년 거듭된 교육통제에 대한 불만이 폐지론으로 터져나온 셈이다. 기업과의 공생, 일하는 정부를 꿈꾸는 이들이 두고두고 곱씹어볼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