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국회. 국정원의 대선 개입의혹을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장이 술렁였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증인선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증언'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진의가 잘못 전달되면 진행중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또다른 증인으로 출석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마저 재판을 이유로 선서를 거부했다.
그 동안 증인선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청문회 증인의 출석은 곧 증언하겠다는 의미였다. 국회 관계자도 "선서를 거부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이례적인 일이 하루에 두 번이나 벌어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증인선서를 건너뛰고도 청문회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김 전 청장, 원 전 원장은 답변까지 회피하진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에는 적극적이기까지 했다.
이런 돌발상황이 벌어진 모든 책임을 증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은 재판중인 증인이 증언이나 선서를 거부할 수 있게 했다. 여야는 두 사람이 기소된 것을 알면서 증인으로 채택했다. 여당 특위위원들은 "선서거부는 증인의 정당한 권리"라고 옹호했다.
반면 야당은 증인출석 자체에 집중하다보니 이들의 증인선서 거부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못했다. 증인선서를 하지 않으면 위증죄를 적용할 수 없다. 청문회를 지켜보던 야당 관계자들은 "허를 찔렸다"고 탄식했다.
선서 거부는 이 같은 여야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의 상식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증인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 선서 거부로 이 같은 기회를 열어놓는다면 많은 국민들이 청문회 제도를 지지하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 가며 TV 중계를 지켜봐야 하는지 의문이다.
19일 2차 청문회에선 김 전 청장의 16일 발언 가운데 거짓이 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둘 중 어느 쪽이 사실인지 진위를 가려야겠지만 이날 증인 26명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단체로 증인선서를 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진술이나 서면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오늘 따라 선서 내용이 무겁게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