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1400억 때려도 "황제노역 일당 1.5억"...순식간에 '탕감'

벌금 1400억 때려도 "황제노역 일당 1.5억"...순식간에 '탕감'

오석진 기자, 양윤우 기자, 정진솔 기자, 이혜수 기자
2026.05.28 07:30

[MT리포트]구멍 많은 노역제도(下)

[편집자주]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벌금을 내지 못한 수감자를 노역장에서 일하도록 하는 노역 제도에 구멍이 많다. 황제노역만 문제가 아니라 노역수 병원비에 세금이 허투루 쓰이고 있다. 1953년 형법 시행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은 탓인데 이제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때다.

"황제노역 일당 1억" 1465억 벌금도 '초고속 탕감'...3년→7년 상한 무산, 왜
/사진=Chat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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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음에도 수백억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만 수억원씩 벌금을 탕감하는 '황제 노역'을 하게 된다. 벌금은 경우에 따라 수천억원까지 선고되나 벌금을 몸으로 때우는 노역기간은 3년이 최대이기 때문이다.

'황제 노역' 문제는 2014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허 전 회장은 500억원대 규모의 세금을 탈루하고 100억원 상당의 회삿돈을 횡령해 2011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이 확정됐다.

1심은 허 전 회장의 벌금 미납시 하루 노역을 2억5000만원 상당으로 환산했으나 2심은 벌금을 절반으로 줄이고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환산했다. 50일간 노역을 해서 254억원의 벌금을 내게 된 셈이었다. 당시 국민적 공분이 크게 일었고 검찰은 허 전 회장의 노역형 집행을 멈췄다. 허 전 회장은 이후 224억원의 남은 벌금을 2014년 9월까지 반년 동안 수십억원씩 나눠 완납했다.

해당 사건의 영향으로 하루 노역 환산액이 지나치게 커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1억원 이상 벌금에는 노역장 유치기간의 최저기간 제한이 생겼다. 당시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 300일 이상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 1000일 이상 등으로 형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노역장 최대 유치기간인 3년 상한이 바뀌지 않아 벌금이 수백억원대인 경우 여전히 하루 노동 환산액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됐다. 결국 재산을 은닉한 사람에게는 노역장 유치가 벌금을 줄이는 선택지가 된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는 벌금만 1465억1000만원이다. 라 전 대표의 벌금형이 확정됐음에도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1000일간 노역장에 유치되고 벌금은 하루 1억4651만원씩 감면된다. 연봉으로 따지면 534억7615만원이다.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 핵심 인물로 지목된 라덕연 전 호안투자컨설팅업체 대표가 지난해 11월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SG(소시에테제네랄)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항소심 선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 핵심 인물로 지목된 라덕연 전 호안투자컨설팅업체 대표가 지난해 11월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SG(소시에테제네랄)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항소심 선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역장 유치기간을 7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2020년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고액 벌금자의 하루 환산액은 줄일 수 있지만, 벌금형이 장기 구금형처럼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역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이 작량감경을 통해 벌금을 자의적으로 환산해 노역에 처하는 것도 문제"라며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나라가 법정형이 낮지는 않은데, 집행을 잘 못한다. 법 집행부터 잘 해서 벌금을 내도록 하는게 최우선"이라고 했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검찰에 범죄수익환수팀이 있긴 하지만 외국과 비교할때 전문성·규모가 부족하고 지원도 모자라다"며 "외국처럼 아예 엄격하게 재산을 강제집행하는 능력을 더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벌금 못 내면 가두는 한국…해외는 처음부터 '낼 수 있는지' 따진다
성동구치소 /사진=머니투데이 DB
성동구치소 /사진=머니투데이 DB

노역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법조계에서는 벌금이 선고되는 단계부터 납부 가능성과 처벌 효과를 함께 따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부 해외 국가는 처음부터 피고인의 소득과 경제력을 반영해 벌금액을 정한다. 낼 수 있을 만큼만 벌금을 매긴다는 뜻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현행법은 범죄의 내용과 책임 정도를 고려해 벌금 총액을 정하고 이를 내지 못하면 노역장에 유치하는 방식인 총액 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피고인들은 경제 사정에 관계없이 동일한 벌금을 낸다. 이들이 벌금을 낼 수 있는지, 벌금이 실제로 어느 정도 부담이 되는지는 고려되지 않아 경제력에 따라 실제 부담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반면 해외 일부 국가는 일수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먼저 범죄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따라 벌금 일수를 정한다. 그다음 피고인의 소득과 경제 사정을 따져 하루 벌금액을 정한다. 최종 벌금액은 벌금 일수와 하루 벌금액을 곱해 산정된다.

소득이 낮은 피고인은 하루 벌금액이 낮아 전체 벌금이 줄어든다. 반대로 소득이 높은 피고인은 하루 벌금액이 커져 전체 벌금이 늘어난다. 같은 액수의 벌금이라도 빈부에 따라 체감하는 형벌의 고통이 다른 만큼, 실제 부담을 균등하게 맞추자는 취지다.

일수벌금제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1921년 일수벌금제를 도입했다. 제도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02년 핀란드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의 고위 임원이 단순 과속으로 10만달러(약 1억5000만원)가 넘는 벌금을 부과받으면서였다. 단순 과속에 거액 벌금이 나온 이유는 그 사람의 소득이 높았기 때문이다.

독일, 스웨덴, 스위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도 소득이나 경제력에 연동해 벌금액을 산정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벌금을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실제 부담으로 본다는 점이다. 벌금 미납자를 나중에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하기 전에 부담이 가능하면서도 처벌 효과가 있는 벌금을 정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한국도 일수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제도화 논의는 번번이 무산됐다. 벌금액을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검찰 간부는 "정당한 벌금을 매기려면 피고인의 소득과 자산이 투명하게 파악돼야 하지만 쉽지 않아서 산정이 어렵다"며 "정부가 개인의 소득과 재산 규모를 확인하는 행위에 대한 반발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일수벌금제로 바꾸려면 정확한 재산 산정이 전제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형법은 일반법인 만큼 벌금형 체계 자체를 손보려면 형법 전반에 대한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재산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우선 범죄수익부터 제대로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수벌금제는 소득·재산 파악과 집행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하는 제도라 단순히 해외 사례를 가져와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효성 논란도 있다. 소득이 투명한 직장인에게는 제도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반면 현금 수입이 많거나 범죄수익을 숨긴 사람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약 유통,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등 범죄수익 은닉 가능성이 큰 사범에게는 오히려 실제 경제력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앞서 여러 국가들도 벌금형의 형평성을 높이고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되는 인구를 줄이기 위해 일수벌금제를 도입했지만 실패했다. 영국은 일수 벌금제를 1992년 도입했지만 개인의 실질 소득과 재산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행정 인프라가 미비했고 법원이 일일이 소득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업무 부담이 가중돼 결국 6개월 만에 제도를 철회했다. 미국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뉴욕주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했다가 중단했다.

노역장 유치하는 대신 모내기 시키자? 비율 고작 0.3%…왜 활용 안될까
/사진=Chat GPT
/사진=Chat GPT

벌금을 내지 못한 사람을 교정시설 노역장에 유치하는 대신 사회봉사를 시키는 제도가 있지만 실제 활용는 미미하다.

27일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5 검찰연감 연도별 벌과금 집행 상황에 따르면 2024년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을 하게 하는 유치집행 비율은 43.94%지만 사회봉사집행 비율은 0.32%에 불과하다.

최근 10년 추이를 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실제 집행된 벌과금 중 사회봉사집행 비율은 0.28∼0.57% 수준에 머무른다. 반면 같은기간 유치집행 비율은 14.33%에서 43.94%로 크게 늘었다. 특히 2023년엔 유치집행 비율이 46.85%까지 올랐다.

사회봉사는 고정업무가 있지 않고 군대의 대민지원처럼 때에 따라 다르다. 농촌 일손이 부족할 땐 모내기에, 수해가 발생하면 수해복구에 투입된다. 독거노인 목욕봉사나 제설작업도 있다.

사회봉사 제도는 원래 벌금 미납자에 대한 노역장 유치가 사실상 자유형처럼 여겨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자유형은 범죄자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해 일정기간 교정시설에 수용하는 제도다. 징역·금고·구류 등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형벌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를 막기 위해 2009년 9월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집행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됐다.

법무부는 사회봉사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2021년 제도를 확대·개편했다. 사회봉사 허가 대상을 기존 벌금 300만원 이하에서 2020년 500만원 이하로 확대하고, 신청자의 경제적 능력 판단 기준도 중위소득 30% 이하에서 50% 이하로 넓혔다. 2022년에는 70% 이하까지 허용했다.

법무부 출입기자단이 경기 안양에 위치한 안양교도소 수용거실에서 수용자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법무부 출입기자단이 경기 안양에 위치한 안양교도소 수용거실에서 수용자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법무부의 노력에도 사회봉사 활용률은 저조하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2022년 연구보고서 '벌금대체 사회봉사의 실태와 효율적 운용방안에 관한 연구'는 사회봉사가 잘 활용되지 않은 원인으로 크게 제도를 몰라 신청하지 못하는 문제와 집행의 어려움 등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개선책으로 고지 의무화를 제시했다. 벌금형 집행 단계에서 사회봉사의 선택지를 고지하는 것을 법률에 규정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또 집행의 어려움과 관련해선 벌금미납 사회봉사 대상자가 직장생활과 병행하거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해 야간·주말 등 탄력집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맞춰 사회봉사 집행을 위한 보호관찰 인력도 100여명 충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금용명 교도소연구소 소장은 "단순히 구금만 되고 일을 안 하는 것보다는 거리 청소나 공공기관 근무 등 봉사라도 하는 게 나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원에서 선고받은 벌금을 한 번에 전액 납부하지 않고 나눠 내도록 하는 분납제도 방안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액 벌금 미납자들 중 정말 몸이 아프고 병든 사람들은 사회봉사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적을 것"이라며 "오히려 나가서 일을 못할 수도 있으니 집행을 확실하게 하는 다른 대체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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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진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오석진 기자입니다.

양윤우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양윤우 기자입니다.

정진솔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정진솔 기자입니다.

이혜수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이혜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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